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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저의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저에게 주신 아내와 자녀들(딸, 아들)은 저의 자랑이며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한국에서부터 간호사로 늘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2014년에 미국 RN(간호사)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영주권을 받은 후 켈리포니아 RN 라이센스를 취득했습니다. 저희 사모가 RN이 되는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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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국에서 보육교사자격증이 있어서 주님의영광교회에서 영아부 사역자로 3년간 영아부 아이들과 신혼부부들을 섬기는 사역을 했습니다. 저의 사모가 영아부를 섬기면서 영아부 예배를 신설하여 인도하였고, 아이들을 돌보는 수준을 넘어 함께 예배하는 영아부로 운영했습니다.

저희 아내가 그런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부산에서 장애인교회(용호소망교회)를 섬기시고 계시기에 결혼 전에 용호소망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장인, 장모님을 도와 교회 안에서 많은 사역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헌신적인 삶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장인, 장모님의 헌신과 삶을 닮아 처남은 영락교회(서울 중구)에서 2009년에 미얀마 선교사로 파송받아 지금까지 미얀마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하며 그 땅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의 아내의 가장 큰 장점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입니다. 밝은 성격으로 누구와도 편하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을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밝은 성품이기에 저와 함께 목회사역에 귀한 동역자입니다.

황정현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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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경(큰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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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규(작은아들)

사랑하는 두자녀(임성경, 임대규)는 지금 모두 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 딸(임성경)은 지금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어릴 때부터 특별히 학업이 월등하여 지금 전액 장학금을 받고 4학년에 공부 중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RN(간호사)인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들(임대규)는 College에서 2학년으로 내년에 대학을 진행준비중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2012년 한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유치원 때 미국에 들어와 처음에 적응하느라 많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감사하게 학교를 잘 적응하고, 학교와 교회에서 모범이 되어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저희 아이들이 미국의 문화와 언어도 이해 할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 정서도 잊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기에 완벽한 이중언어를 구사합니다. 한국어로 모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고 오히려 미국보다 한국 문화를 더 친숙히 여기고 있어 감사합니다. 

또한 저희 자녀들이 찬양에 은사가 있어 딸은 교회에서 메인 건반으로 섬기고 있고, 아들은 교회에서 드럼으로 찬양을 섬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와 찬양을  함께하며 예배드리고 훈련했던 것이 아이들의 삶에 찬양이 자리 잡는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안수 받을 때 저희 아버지께 우리 가정에 귀한 보물이라고 전해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증조할머니의 성경책입니다. 증조할머니의 신앙은 제가 잘 모르나 그 때부터 증조 할머니의 신앙이 저희 집안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1908년에 세워진 하동읍교회를 초창기부터 섬기셨던 증조 할머니의 믿음이 할아버지과 할머니에게 전해졌고, 할머니의 기도로 아버지는 신앙을 선포의 21세기의 사도 일 수 있는 CBS기독교방송(부산 본부장)에서 사역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저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믿음의 본을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를 양육하신 부모님은 저희 누나에게도 훌륭한 영향력을 끼쳐 선교사로 헌신하게 하셔서 시리아에서 12년 사역하고 시리아 내전으로 사역지에서 철수해 지금은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사역과 시리아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를 세우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4대째로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신앙으로 자랐습니다. 

[부: 임현모 장로, 모: 김금란 권사 섬기는 교회: 부산 백양로교회(예장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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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사모 역시 장인 장모님이 믿음을 따라 성장하였습니다. 장인은 지금 부산에서 장애인교회를 목회하시며, 그곳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장인: 황병량 목사, 장모: 윤윤자 사모  섬기는 교회: 부산 용호소망교회(예장기드온)]

 

저와 우리 사모 가족 모두가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입니다.

하나님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는 가족들이 바로 저의 신앙배경입니다.

용호소망교회 소개영상

저는 지금 하나님이 내 삶에 동행하시며 함께 하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창세기 21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그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산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퀸즈장로교회 성도님들을 위해 일하시고 계심을 또한 믿습니다. 저의 인생 길에서 만나게 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기대하며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쓰임받음이 얼마나 기쁨이며 축복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 삶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과 그리고 그 승리가 나의 실력이나 노력이 아닌 나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자들의 기도때문임을 믿습니다. 모셍의 손을 함께 붙들어준 아론과 훌과 같은 동역자와 함께 할때 승리를 이룰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 하나를 저의 신아아의 고백으로 믿고 바라봅니다.

이런 믿음은 저의 인생의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고 그들을 섬기며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 믿음으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시애틀 DTS 때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을 때 두란노 경배와 찬양집회에서 중국을 두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찬양인도자 하스데반 선교사님의 요청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 중국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그 서원기도에 따라 외국어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신학교로 가게 된 것이 저의 소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신학교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며 작은교회에서 전도사로부터 대형교회 부목사까지 여러 사역을 섬기며 사역의 기쁨과 열매를 보고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특별히 저의 가정은 1남1녀인데 저희 누나 가정은 매형과 함께 지금 요르단에서 시리아를 섬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고, 저희 아내 가정도 1남1녀인데 저희 처남은 영락교회 파송선교사로 미얀마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양쪽 집안에 한명씩 선교사를 배출하고 있기에 저희 가정도 선교를 나가야 할 것에 대해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국으로 유학과 사역의 길을 열어주셔서 지금 미국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역 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제목은 하나님의 큰 나무로 저희 가정을 통해 힘든 영혼들과 가정들이 쉼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명에 따라 큰 나무로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사역자 되길 기도합니다.

CCC 순장수련회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97년 군대를 제대한 후 25살때 부산 사랑의 교회란 개척교회입니다. 첫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 당시 모교회에서 제가 청년회장과 학생부 총무등 청년으로 여러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청년담당하시던 목사님(김기동 목사: 현 연산로교회 담임)께서 작은 개척교회로 청빙이 되신 후 저와 함께 가서 섬기고 싶다는 말씀에 순종하여 첫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에 DTS를 가기로 되어 있어서 1년 조금 넘게 함께 사역하였는데 그 교회에서 아동부 부터 중고등부 청년부 성가대 지휘까지 담임목사님을 도와 거의 모든 교회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사찰집사님이 안계셔서 교회 청소와 잡다한 업무까지 섬기며 헌신했습니다. 저에게 그 교회가 첫 사역지였기에 그때 그 교회에서 섬겼던 사역은 잊을수 없는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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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부산 용호동 남부산제일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맡아 약 30명의 중고등부 학생부 사역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후 인천에 올라와 효성영광교회에서 아동부와 청년부를 맡으며 열심히 섬겼습니다. 특별히 효성영광교회 청년들과 찬양팀 싯딤을 결성해 찬양앨범도 제작하고 예배를 새롭게 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효성영광교회 담임목사님의 지시로 주일 오후 예배를 청년예배로 변화시키고 찬양예배로 예배를 기획하고 섬겼습니다. 이때 그 지역에 찬양의 새로운 예배를 제시했고, 예배부흥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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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서울신학대학원 진학으로 성결교단으로 교단을 옮기고 신대원을 다니며

새인천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을 도와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섬기며 사역했습니다.

이후 성결교단의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 청빙 받은 한기채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저를 선택해 함께 사역하자고 해주셔서 신대원 졸업 후 바로 전임전도사로 중앙교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8년동안 전임전도사와 부목사로 섬겼습니다. 

중앙성결교회가 올해로 118년 된 교회(1907년 창립)인데 전임전도사로 부임하여 부목사로 임명 받은 사역자는 지금까지도 제가 유일합니다. 그 교회는 원래 모든 사역자가 각자 포지션으로 청빙받아 그 위치(전도사, 목사)에 따라 사역을 하고 자신의 위치가 변경되었을 때 사임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기채목사님과 당회의 특별 결의로 저는 전도사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이어 섬길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기채 담임목사님의 전폭적인 지지로 저는 그 교회의 여러 사역들을 감당했습니다. 100주년 기념 교회리모델링 공사의 총책임을 맡아 공사 감독역할을 충실히 진행하여 본당과 교육관을 아름답게 리모델링했으며, 미디어사역으로 100주년 행사를 성공스럽게 진행했고, 또한 교육목사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약 500명이 되는 교육부를 총괄하여 교육목사로 약 1년간 섬겼고, 교회사무장의 불미스러운 재정문제가 발생했을때 한기채 목사님이 저를 행정목사로 임명하셔서 교회 전체 살림을 책임져 운영했습니다.

​부산 사랑의 교회(개척교회)

​부산 남부산제일교회

​인천 효성영광교회

​인천 새인천교회

서울 중앙성결교회 모습과 사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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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영광교회 야베스 새가족환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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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영광교회 야베스 수련회

​주님의영광교회 야베스 야외예배

특별히 담임목사님께서 제가 맡았던 청년부에 힘을 실어주셔서 단기선교와 문화사역을 진행했으며 그리고 오후예배를 청년부 중심으로 진행하게 하셨습니다. 오후예배를 온전히 청년예배로 전환해 다양한 문화사역과 연계해 드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뮤지컬 전문사역자를 초청해 청년들을 훈련시켜 뮤지컬 메시아를 공연하고, 이후 청년들 중심으로 뮤지컬 극단(극단 여닛: 보도자료 참고)도 창립하였습니다. 단기선교도 인도와 필리핀 태국 등 청년들을 훈련시켜 직접선교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지내던 중 하나님께서 새로운 비전을 허락하시고, 너무 익숙해진 사역속에서 아내와 기도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게 하셔서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오게 하셨습니다.

2015년 유학중 주님의영광교회로 새로운 사역지를 허락하셔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주님의영광교회에서 미디어사역과 교회 중직들이 포진된 1,3교구를 맡았습니다. 그러다 12교구(30대 청년교구로 ‘야베스’라고 부릅니다)를 담당하라는 신승훈 담임목사님의 지시로 12교구 청년들을 맡아 열심히 섬겼습니다.

 

지난 모든 사역들을 돌아보면 감사하게도 제가 맡았던 사역에 있어선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숫적인 그리고 영적인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효성영광교회 아동부를 섬길 때 50명정도 출석의 아동부를 200명 출석으로 성장시켜 연중에 다른 부서와 예배장소를 바꾸는 일도 있었고, 또한 중앙성결교회에 청년부를 맡았을 때 약 70명의 청년부를 150명로 성장시켰으며,

LA 주님의영광교회  야베스 청년부도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 청년부 모임이 40명까지 떨어져 위기에 놓인 상태였지만 제가 사임 땐 120명 출석 하는 공동체로 성장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늘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하나님은 저를 통해 어느 사역지에서든 그 공동체를 새롭게 하고, 부흥케 하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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